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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신을 2004년에 처음 만났다.

우연히 홍진경이 쓴 편지를 봤다. 나는 정신이라는 사람을 모르지만 그 사람이 정말 부러워졌다. 이런 편지를 생일선물로 받다니. 홍진경이 쓴 다른 글들도 있어서 읽어봤는데 글이 참 따뜻하다. 그녀는 좋은 사람인 것 같다. 흰 쌀밥에 가재미얹어 한술뜨고 보니 낮부터 잠이 온다. 이 잠을 몇번 더 자야지만 나는 노인이 되는걸까. 나는 잠이들며 생각한다. 다시 눈을뜨면 다 키워논 새끼들이랑 손주들도 있었으면 좋겠다. 수고스러운 젊음일랑 끝이나고 정갈하게 늙는일만 남았으면 좋겠다. 그날의 계절은 겨울이였으면 좋겠다. 하얀눈이 펑펑 내려 온통을 가리우면 나는 그리움도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새벽 미사에 갈 것이다. 젊은날 뛰어다니던 그 성당 문턱을 지나 여느날과 같은 용서를 빌고 늙은 아침을 향해 걸어 나올 때 그날..

글조각 2020.04.29

늦은건 없습니다 .txt

넓은 백양관 대강당에 자는 사람이 반, 강의를 듣는 사람이 반. 백발의 교수님은 느리지만 차분하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나는 여러분 나이 때 삼수를 했습니다.' 옆 사람이 움찔하면서 잠에서 깼어요. 삼수? 여기저기서 뜨이는 눈들을 보신건지, 교수님의 눈가에 살짝 웃음이 감돌았어요. '이 연세대학교에 들어오려고 삼수를 했어요, 내가. 삼수.' 그래. 네가 들은 게 맞다, 라는 듯 교수님은 몇몇의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시작하셨어요. 교수님은 삼수생이셨어요. 연대생이 되고 싶어 삼수를 하셨대요. 현역, 그리고 재수 생활 때 닿을 듯이 닿지 않은 연대가 가고 싶어 삼수를 하셨대요. '많이 늦었지. 많이 늦었어요. 대학교도 늦게 왔으니, 군대도 늦게 갔고.' 어디든 따라다니던 '삼수'의 ..

글조각 2020.04.29

첫사랑 이야기.txt

그는 새벽에 전화를 했다. 전화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혼자 있다가 자해를 하지 못하게, 나머지 하나는 그가 자해를 하지 못하게. 사실 우리는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나는 907호, 그는 809호. 전화를 하다가 문득 소리가 끊기거나 두려운 소리가 나면 언제든지 뛰어올라오거나 혹은 뛰어내려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느 한쪽이 먼저 잠들었다. 보통은 그가 먼저 잠들었다. 그는 고3이었고, 나는 고2였으니까. 한 살이라도 어리니까 더 쌩쌩한 거라고 나는 장난 식으로 말했다.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는 늘 어깨가 쳐져 있었다. 쳐져? 처져? 뭐가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축 늘어져 있었다는 뜻이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집 앞 놀이터에서였다. 미끄럼틀 위에 앉아 청포도사탕을 빨아 먹고..

글조각 2020.04.28

그 애, 내가 열병처럼 앓았던 그 애, 피아노 그 애.

1. 그 애 우리는 개천쪽으로 문이 난 납작한 집들이 개딱지처럼 따닥따닥 붙어있는 동네에서 자랐다. 그 동네에선 누구나 그렇듯 그 애와 나도 가난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내 아버지는 번번히 월급이 밀리는 시원찮은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그 애의 아버지는 한쪽 안구에 개눈을 박아넣고 지하철에서 구걸을 했다. 내 어머니는 방 한가운데 산처럼 쌓아놓은 개구리인형에 눈을 밖았다. 그 애의 어머니는 청계천 골목에서 커피도 팔고 박카스도 팔고 이따금 곱창집 뒷방에서 몸도 팔았다. 우리집은 네 가족이 방두 개짜리 전세금에 쩔쩔맸고, 그애는 화장실 옆에 천막을 치고 아궁이를 걸어 간이부엌을 만든 하코방에서 살았다. 나는 어린이날 탕수육을 못 먹고 짜장면만 먹는다고 울었고, 그 애는 엄마가 외박하는 밤이면 아버지..

글조각 2020.04.28

귀염 뽀쨕한 가구를 디자인하는 Ryan Belli

Ryan Belli 강아지랑 같이 찍은 사진이 매우 귀엽다ㅋㅋㅋㅋ 라이언벨리는 로스엔젤레스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가구가 너무 귀엽고 창의적이라고 해야하나 완전 취향 저격이라서 감탄했다ㅋㅋㅋㅋ 너무 귀엽다. 가구 전체 모습은 이런 모양 에구 귀여웡ㅠㅠㅠ 아기가 그린 그림을 가구로 만든거 같은 느낌 가구가 아니라 어디서 뿅 하고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ㅋㅋㅋㅋ 요건 인터뷰 기사! 2019년에 한 인터뷰인듯 https://www.sightunseen.com/designers/ryan-belli/ Ryan Belli - Sight Unseen Ryan Belli’s debut collection—whose centerpiece was a series of chairs and sofas that looked ..